* 신라 눌지왕 2년 (A.D. 418)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직지라는 명칭은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가 중수하였고, 경순왕 4년(930) 천묵대사가 2차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고려태조 19년(936) 능여조사
가 중창하여 큰 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었다.
조선 정종 원년(1399) 중건이 있었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중수하여 조선8대 사찰중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 시켰다.
이곳은 많은 국사 왕사가 수도 정진하던 곳이며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호국성사 사명대사가 입산한 곳이가도 하다. 벽개정심
선사가 조선조의 법난때 이곳에 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선조 29년(1576) 왜적의 방화로 모든 전각, 당우가 소실된
것을 광해군 2년(1610) 인수, 명례 스님등이 제건하였다. 근세에 들어서는 고종 년간에 일부 중수가 있었다. 1963년부터 30여년간
에 걸쳐 현재의 전각과 당우를 중창, 중수하였다. 사찰내에서는 석조 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 3층석탑(보물 제606호)
비로전 앞 3층석탑 (보물 제607호) 청풍료앞 3층 석탑 (보물 제1186호) 대웅전 내 삼존불탱화 3폭 ( 보물 제670호) 등의
중요문화재와 많은 건물이 보존돼 있다.
소재지 : 졍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
보물 제 1576호
소재지 : 졍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이다. 직지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선 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불타버려 선조 35년(1602)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이후 인조 27년(1649)에 중영이 있었고,
영조11년(1735)에 다시 중창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 형식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은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솝박하게 조각하였다.
폭이 9m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그린 관음도가 있으며,
다른 벽면도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하였다.
직지사 대웅전 앞 삼층석탑
보물 제 606호
소재지 : 졍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이 두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비로전앞 삼층석탑과 함께 원래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의 도천사터에 쓰러저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기단인 것이
특이하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 새김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
었는데, 몸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 모양만 돋을 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1층부터 차례로 5. 5. 4단의
처마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상륜부는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이 탑들은 단층기단인데다가 1층 몸돌이 유난히 길게 올라가 있어서 시원한 상승감이 돋보인다.
비 로 전
일명 천불전이라 하는 이 건물은 고려 태조의 지원으로 능여조사와 그의 제자 신흥. 혜안등에 의하여 초창되었다. 직지사내에서
임진왜란을 모면한 유일한 건물이며, 현종2년(1661) 인계대사가 중창하였고, 숙종 28년(1702) 정행대사 등의 중수와 함께
다시 1899년의 중수를 거쳐 1975년 주지 녹원화상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며,총 51평이다.
천불상은 고려시대 속리산의 경잠대사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전한다
* 14개의 나무 계단에 경주옥돌로 조성된 천개의 불상 중 발가벗은 동자상을 첫눈에 발견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한번 찾아보세요
직지사 비로전 앞 삼층석탑
보물 제607호
소재지 : 졍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이 석탑은 통일신라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도천사터에 있던
3기의 석탑중 하나이다. 1974년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1976년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이 탑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탑이 한 곳에 서 있는 경우는
그밖의 예가 남아 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 탑은 삼층석탑이면서도 이중기단이 아닌 단층기단 석탑으로서,
이러한 예들이 문경, 상주, 선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특색으로 이해 되고 있다.
명부전
황악루
직지사 청풍료 앞 삼층석탑
보물 제 1186호
소재지 : 졍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이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으로, 원래 구미시 선산읍 원동 낙동강변 강락사터로 전해지는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1968년 경북 선산군 군청 앞뜰로 옮겼다가 1980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으며, 이때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 기단이 단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다. 기단은 한 면을 두 장의 돌로 짜 맞
추었는데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 새김 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을 이루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에는 다른 장식없이 귀기둥만 돋을 새김하였으며,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5단의 처마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높이가 2. 3 층에 비하면 성큼하게 높으면서도 지붕돌의 두께와 폭이 알맞아 단층기단의 탑이면서도 차분한안정감과
경괘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직지사 사명각
* 사명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 유정 (1544~1610)
사명대사의 영탱을 봉안하여 대사의 유덕을 기리는 건물로서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임씨 자는 이환이며, 법명은 유정 법호는 사명 또는 송운이다.
1544년 10월 17일에 경남 밀양의 무안면 고나리에서 태어나 15세에는 황악산 아래 유촌 황여헌으로부터 유학을 수학하더니
곧 황악산 직지사로 출가하여 주지 신묵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18세가 되는 명종 16년(1561)에는 선과에 합격하고,
30세인 선조 6년(1573)에는 직지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49세가 되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적의 진중에 여러 차례 드나들며 왜적을 설득하여 백성들의 화를 면하게 하더니 선조 37년 (1604)에는 61세의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억류 되었던 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귀국하므로 선조는 가의대부로 삼아 어마를 하사하는 등 대우가 극진하였다.
광해군 2년(1610)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니 시호를 자통홍제존자라 하였다.
관음전
설법전
남월료
만덕전
범종각
직지성보 박물관
만세루
사천왕문
대양문
공사중인 일주문
직지사 주변의 암자
운수암
직지사에서 바라본 황악산 (해발 1.11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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