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풍경

팔공산 영천 중앙암(돌구멍절), 극락굴, 만년송, 삼인암.

에고이스트j 2013. 2. 11. 17:39

*  능선에서 담은 돌 구멍절 

 

 

 

 

 ◈  중앙암의 역사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 25-1

은해사의 산내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중앙암을 찿아가는 길은,  먼저 은해사에서 2km 거리에 있는 백흥암에 오른 다음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중암이라 부르는 기암절벽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암자에 이르는 길은 마치 요새의 석문처럼

생긴 자연바위를 거쳐야 한다. 이 바위 덕분에  "돌구멍 절"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  절은 통일 신라때인 834년(흥덕왕9)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엿다. 심지왕사는 같은 팔공산내의 동화사를 창건한 분으로 진표와 영심을 이은

신라 법상종의 제3조이다. 정확한 창건의 사정은 전하지 않지만 왕사가 동화사를 창건한 후 산내 곳곳에 수행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묘봉암과

함께 이 곳 중앙암이 들어선 것 같다. 중앙암은 가파른 산새와 험한 지형이지만 팔공산의 절경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아른다운 곳이다.

속인의 눈에야 그저 경관의 빼어남이 보이지만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수행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건이래 별다른 변천 사실은

전하지 않으나 암자 뒤편의 산중턱에 삼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 등이 파손된 채 남아 있다. 또 주위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 있어

절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 준다. 1823년(순조23) 태여대사가 중수하였고, 1834년(순조 34) 우일 과 유엽대사가 힘을 합쳐 중수하였다.

지금의 가람은 최근에 중건 된 것으로 법당과 산신각은 1958년에 요사는 1980년대에 새로 지었다. 

또한 2011년에 소운당을새로이 개축을 하였다.

 

 

날   짜  :  2013년 2월11일

 

 

 

 

 

 

 

 

 

 

 

 

 

 

 

 

이 구멍을 지나가야 법당으로 통한다.

 

 

 

 

 

 

 

 

 

 

 

중앙암(돌구멍절)법당

 

 

 

 

 

 

 

소운당

 

 

 

 

 

 

 

 

 

 

 

 

 

 

극락굴

* 선사시대 원효스님이 화엄경론을 집행 할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이 굴에서 화엄경 약찬게를

외우다 화강삼매에 들어 불빛을 발산하였는데 그 힘으로 바위가 갈라지고 그 소리에 의문이 풀리어

화엄론을 완성했다는 설이 전해오고 그 후 조선 말기 영파 스님(은해사 비석에 약력이 있음)이

화엄 강백으로 유명햇는데 이굴에서 어느 여름날 정진하다가 삼매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인들 강의

시간도 놓치고 밤이 늦도록 스님이 오지 않아 큰 절 대중들이 모두 찾으려고 나와 보니 스님이

이 굴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다시한번 도인 큰 스님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 스님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함.

근세에 와서 이 도략에서 공부를 하거나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청정히 계를 지키고 기도하면

잘 이루어진다고 하여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기만 한다면 이 극락굴은 몸이 아무리 굵다고 해서 통과를 못하는

사람이 없다 하며 세번을 돌아야 소원을 이루어진다고 한다."

 

 

 

 

 

 

 

좁아보여도 안은 꽤나 넓은편이다.

 

 

 

 

 

 

 

 

 

 

 

 

 

 

 

 

 

 

 

 

 

 

 

은해사 중앙암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2호

* 이 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의 삼층석탑으로 탑의 높이는 3m이고, 하층기단 갑석의 폭은 1.46m이다.

다듬질한 긴돌 4개를 결합하여, 지대석으로 깔고, 그 위에 이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강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는 등의 특징을 보아 고려초기에

조성된것으로 볼수 있다.

암벽 아래 터를 조성하고 남북선상으로 나직한 축대를 쌓아 마당을 2단으로 구성하고 서쪽에는 법당,

동쪽은 석탑을 배치하였으며, 법당지에서는 법당 창건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이골문 기와조각이 많이 출토되었다.석탑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중앙암(돌구멍절)을

비롯하여 극락굴, 삼인암, 건들바위, 만년송, 장군수등이 있다

 

 

 

 

 

 

 

 

 

 

 

만년송

* 이 만년송에서 맺어진 인연은 만년이 간다고 하여 많은 가족, 연인들이 이곳에서 손을 잡고 후생의

인연도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도록 이 만년송앞에서 경건히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만년송에서 내려다본 백흥암

 

 

 

 

 

 

 

 

 

 

 

 

 

 

 

 

 

삼인암의 전설

* 중앙암 법당 바로뒤 봉우리에 바위3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삼인암이다.

삼인암은 옛날 어느 처녀가 자식이 귀한 집에 시집을 갔으나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효염이 있는 약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으나 대를 잇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이

사정을 듣고 정성을 드리라고 하면서 현재 있는 삼인암의 장소를 알려주었다.

부인은 여기에서 정성을 드려 삼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기에서 아들 삼형제 혹은 친구 세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어 이곳에 와서 정성을 드리고 힘써 정진하여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전설도 있다.

 

 

 

 

 

 

해우소

* 중앙암 해우소의 깊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옛날에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돌구멍절에서 수행을 하고 계시던 세 분의 도반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절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통도사에 계시는 스님이

"우리절은 법당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1말 3되나 떨어진다" 고 하며

은근히 절의규모를 법당 문 크기에 빗대어 자랑을 하셨다. 이어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이

"우리 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때는 배를 띄워야 저을수 있다." 고 하며

절의 규모를 큰 솥이 있음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두 스님의 자랑을 듣고 있던 돌구멍절 스님은 절의 규모등으로 자랑할게 없자,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기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 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한바탕크게 웃었다는 아야기가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중앙암 스님이 제일 큰 허풍으로 도반스님들의 절 자랑을 제압했다고 볼수 있지만

벼랑위 바위속에 만들어진 중앙암 해우소가 얼마나 깊은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설화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다는 해우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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